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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책] 김혜진, '9번의 일'

by 책읽는mm 2022. 3. 2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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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 보고 싶었는데,
그 책은 나와 인연이 없었나보다.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.
그러니까, 이 책은 작가님 이름만 보고 고른 책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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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그는 수리와 설치,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일했다.'
이 책의 첫 문장이다.
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문장이며, 이 책의 결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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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인공의 이름이 없는 책이 간혹 있다.
이 책의 주인공도 이름 없이 '그'로 불리고, '9번'으로 불린다. 그래서 제목이 9번의 일이다.
현대소설에 나타난 익명성은 곧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데 ,
이 소설에서도 그러한 점을 꼬집기 위해 선택한 장치 같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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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9번'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.
우리에게도 '9번'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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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한 '그'에게 회사는 타 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가서 영업 업무를 맡긴다.
그에게 회사를 나가라는 무언의 협박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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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그는 판매나 영업 업무가 지난 26년간 통신주를 매설하고, 전화선을 끌어오고, 인터넷 케이블을 연결하던 자신의 현장 업무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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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져 묻던 동료들이 하나 둘 씩 회사를 나갔고, 그래서 그는 버텨야 했다.
끝까지 그는 버텼을까? (궁금하면 책을 읽어 보셔야 합니다!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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씁쓸한 우리네 인생.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.
담담한 문체가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만들었다.
나름 열린(?)결말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, 마지막 그의 행동이 통쾌하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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권고사직, 대기업의 만행, 노동조합의 시위 등 현대 사회의 갈등과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
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.
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, 했던 사람들이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.

삶은 어렵고 늘 고통이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기쁨을 찾아야 한다.
그가 선택한 마지막 결말,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?
그 답을 찾으려면 나는 또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....^^

그런데, 요즘 읽은 책들의 소재가 다 비슷하다..
나 요즘 힘든가? 회사 그만 두고 싶나? ^^;

[기억하고 싶은 소설 속 문장]

- 한 사람이 버티면 결국 다른 한 사람이 나가야 합니다. 말은 안해도 다들 연장자가 자진해서 나가주길 바라고 있어요. 그게 가장 보기도 좋고요.

- 왜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닥치고 나서야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알게 되는 걸까. 그러나 그런 것들을 미리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.

- 재교육 시즌이 끝나면 의례적으로 평가 시간을 만들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은근한 방식으로 끈질기게 퇴직을 종용한다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.

-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. 마침내 자신이 회사가 만들어놓은 시험장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걸 직감하게 된 거였다.

- 삶의 대부분은 만족과 행복 같은 단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비로소 삶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.

- 그러니까 그가 회사에 기대한 건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다. 존중과 이해, 감사와 예의 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바란 것뿐이었다.

- 처음부터 이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. 이런 무모한 싸움이 아니고 다른 어떤 것에 이처럼 긴 시간과 노력을 쏟았어야 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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